‘적토마’의 해라는 병오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역동적인 시간의 입구에 섰으나, 정작 우리를 맞이
하는 것은 기이한 침묵입니다. 예년 같으면 각 출판사가 쏟아냈을 ‘출간 예정 목록’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장의 위축이 아닙니다. 이는 정신의 영토가 좁아지고 있다는 징후이자, 우리가 읽어야 할 세계가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입을 닫고 있다는, 혹은 할 말은 많되 대변할 소리를 잃고 있다는 비극적 침묵입니다.
새해 첫날부터 들려온 그리스도교 저자들의 소식은 책을 사랑하는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
니다. 앎과 삶, 본문과 인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언제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곧바로 성인이 되는 길을 보장하지 않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책은 마법 지팡이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책을 놓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책은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하고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보게 만드는 가장 탁월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실망스러운 소식 앞에서도 냉소보다는 반면교사를, 포기보다는 성찰을 택하는 것. 그것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품위일 것입니다.
이번 1월호에는 두 편의 서평을 마련했습니다. 로완 윌리엄스가 자신의 스승과도 같았던 마이클
램지의 신학을 성찰한 글, 그리고 김형국 목사의 저작을 다룬 글입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두 글 모두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삶과 사상을 천천히 되새김질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독서가 아니라, 앞서 걸어간 이들과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일종의 ‘성도의 교제’이자 ‘환대’의 독서입니다. 추운 겨울, 이 교제와 환대의 감각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교 서평지 엠마오가 독자 여러분을 만난 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갑니다. 이 소박한 실험이
지속될 수 있었던 힘은, 기꺼이 읽는 수고로움을 감당해 주신 1,459명의 구독자 여러분과 기획위원들의 헌신 덕분입니다.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잠시 멈추어 책을 펼치는 이 ‘작은 습관’이, 새해에도 우리를 더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가길 소망합니다. 엠마오는 올해도 성실하게, 텍스트가 주는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