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서평지 엠마오 2025년 마지막 호를 내놓습니다.
2025년은 역사의 격랑을 피부로 깊게 느낄 수 있던 해였습니다. 세계는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실제 고통과 불안, 분열과 상실이 중첩되는 장소임을 끊임없이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런 시절에 텍스트를 읽고, 문장을 곱씹고, 삶을 되돌아볼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고백을 우리는 자주 들었습니다. 급감하는 책의 판매량, 침묵 속으로 밀려나는 출판의 현장은 단순한 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기억과 전달의 사슬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징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평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과연 독자들의 독서 생활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 이 질문은 매 호를 준비할 때마다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그리고 결국 다시 한번, 창간호부터 우리가 붙들어 온 목표로 돌아가게 합니다. 지성사의 흐름을 더듬고, 사유의 지형도를 그려 보이려는 시도입니다. 책 한 권을 고립된 상품으로 소비하는 대신, 그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떤 전통과 긴장을 품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일 말입니다. 엠마오의 궁극적인 목적은 파도치는 수면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파도를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흐름을 가리키는 데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우리의 시대를 돌아볼 때, 어떤 책들이 있었고 어떤 사유가 분투했는지를 묻는다면, 엠마오가 그 기억의 한 자락을 차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는 거창한 야심이 아니라, 전달의 윤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일 것입니다. 의미 있는 책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 책들이 형성하는 느린 역사에 이름을 붙이는 일,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작은 시도가, 그리스도교 안에 여전히 굳어 있는 편견과 단순화된 언어를 가로지르는 쇄빙선이 되기를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엠마오 기획위원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과 서평을 이 자리에 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올해의 책’과 조용히 대조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불안한 시대를 견뎌낸 모든 분께, 깊은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