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지 엠마오 독자님들께,
가을이 시작됨을 알리는 처서가 지났지만, 여전히 한낮은 묵직한 더위에 눌려 있습니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 있어, 달력의 표정도 조금은 낯설고, 계절의 호흡 또한 어긋나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추석이 멀리 10월로 물러나고, 더위의 그림자도 그만큼 길게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침과 저녁, 문득 스치는 바람 속에는 다른 리듬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선선한 바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계절이 이미 우리를 향해 오고 있음을, 보이지 않는 전환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일깨웁니다. 언젠가 교부들이 말했듯 변화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갈래의 징후들을 통해 감지되는 법입니다.
이번 8월호 엠마오는 그러한 계절의 징후들처럼, 여러 갈래의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프리뷰와 각 기획위원의 글, (지난 호부터 더해진) 편집장의 글, 그리고 특별한 인터뷰가 그것입니다. 특별히 이번에 엠마오의 추천도서로 선정된 올리버 오도너번의 『부활과 도덕 질서』는, 이미 수많은 인용이 되었지만, 정식 한국어판으로는 처음 출간된 대작이자 현대판 고전입니다. 책 출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실은 인터뷰가 이 거대한 책을 짐이 아닌, 신앙과 사유의 결을 따라 함께 짊어지고 걸어가야 할 동반자로 느끼게 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엠마오의 발행을 맡으며 매번 그리스도교 단행본의 출간 현황을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때로는 거의 기적처럼 이어지고 있는 출판사들의 분투와 성실함을 느끼게 됩니다.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신앙과 사유, 그리고 삶의 증언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수고를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동역자로서 응원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가을, 혹은 이미 바람 속에서 시작된 가을을 맞으며, 독자 여러분이 서점을 찾아 책을 집어 드는 그 행위가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한 시대의 신앙과 지성을 지탱하는 작은 예배의 몸짓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을 산다는 것은 결국 한 편집자의 긴 사유, 한 저자의 깊은 기도, 한 번역자의 땀방울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 행렬에 함께할 때, 더위와 어둠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계절 한가운데에서도, 이미 다른 계절의 빛을 미리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대표 문신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