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급작스러웠던 장마가 물러나자, 숨 막히는 무더위가 그 자리를 메웠습니다. 거리마다 폭염경보가 내려졌고, 이른 아침부터 쏟아지는 햇살은 계절의 경계마저 지워버릴 듯합니다. “올해가 앞으로 남은 생애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일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 않는 나날입니다.
한편, 사회는 여전히 어수선합니다. 분열과 오해, 논쟁과 피로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때때로 평화와 조화를 향한 갈망을 환상처럼 간직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의 이견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 언어에 담긴 맥락을 기꺼이 경청하며, 의미를 더듬어가는 지난한 노력 속에서만 얻어지는 것일지 모릅니다.
엠마오는 언제나 이러한 시대의 상황을 의식하고, 나름대로 응답하는 길을 모색합니다. 이번호에서도 그 모색은 계속됩니다. 이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글은 미국 남침례신학교 총장 알버트 몰러가 진행한 피터 브라운의 인터뷰입니다. ‘고대 후기’ 연구라는, 사실상 로마 후기 연구의 지형을 개척해온, 그리하여 초기 그리스도교 및 중세 그리스도교 연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석학에게 미국 복음주의 진영의 대표적 지성인이 지극한 존경심을 담아 진행한 인터뷰는 그 내용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 존중, 경청, 대화의 의미를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각별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글은 지난 5월, 성공회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욥기 논쟁'에 대한 윤성덕 교수의 후기입니다. 후기는 욥기의 다양한 주제를 두고 두 학자가 충돌과 조율, 동의와 불일치의 리듬 속에서 만들어낸 특별한 시간을 다루고 있으며 논쟁이란, 탁월한 사유의 교환이란 단지 이론의 대결이 아니라, 경청과 반문, 그리고 상호 존중의 태도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지금, 해묵은 질문들을 다시 묻고, 낯익은 언어를 다르게 발음할 수 있어야 하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엠마오는 단지 책을 소개하는 서평지가 아니라, 질문과 경청이 살아 있는 하나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체를 조망하면서도, 구체적인 타자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이 길 위에, 엠마오가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