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름이 성큼 다가옴을 느끼게 하는 5월의 끝자락에 서평지 엠마오 5월호를 발행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분열에 익숙해졌습니다. 거리를 좁히기보다는 멀어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시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저들은 누구인가’라는 경계 짓기가 더 쉬운사회. 현대는 이제 공간뿐 아니라 언어 속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오늘의 언어는 대화라기보다는 선언이고, 설득이라기보다는 공격이며, 경청보다는 반사적 반응에 가깝습니다. 타인을 향한 말은 질문이나 격려이기보다, 의심과 심문이 되기 일쑤입니다. 삶에서 그러하듯, 언어에서도 기다림과 여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말이 단절되고, 그 단절이 관계를 재단합니다. 언어가 환대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언젠가 크리스틴 폴은 환대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중심에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때의 환대는 단순한 행위나 태도를 넘어, 언어까지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언어,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육신을 거절당한 이들을 받아들이는 열린 문이 된 사건, 그리스도교의 중심은 바로 그 언어적 환대의 드라마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환대는 물리적 공간이나 제도적 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말의 방식, 침묵의 태도, 타인을 지칭하는 단어, 질문을 던지는 어조 안에서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환대를 거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어의 빈곤을 직시한 적은 있었을까요? 배우지 못한 말, 알지 못하는 문법을 받아들일 용기를 낸 적은 있었을까요? 들리지 않는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은요?
많은 그리스도교 서적들은 이 시대의 빈곤한 언어를 풍요롭게 하자고, 익숙하지 않은 문법을 받아들일 용기를 내자고, 그리하여 다시 ‘말 걸기’를 시작하자고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단절된 자리에서 다시 말을 건네는 것. 그리스도교는 그것을 ‘부활’이라 부릅니다. 오늘도 엠마오는 그 부활의 언어, 환대의 문법의 길을 모색합니다.
대표 문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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